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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새 학기 수강신청을 하는 대학생처럼 분주했다. 한 손에는 방망이, 다른 한손에는 볼펜을 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LG 선수들은 지난 15일 스프링캠프 출발에 앞서 잠실구장 선수단 라커룸을 오가며 게시판에 붙어있는 일자별 ‘훈련 신청표’에 자기 이름을 직접 적었다. 지난 16일부터 2월7일까지 이어질 애리조나 1차 캠프 오후 훈련 스케줄을 각자 구성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LG는 캠프의 오후를 ‘자아발전 시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LG는 애리조나 1차 캠프를 시작한 뒤로 순도 높은 ‘자율 훈련’을 하고 있다. LG 선수들은 오전 8시 숙소에서 출발해 팀훈련을 한다. 낮 12시30분 점심식사를 한 뒤로는 오후 6시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각자의 훈련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야말로 선택은 선수 몫이다.

LG 야수들이 직접 기입한 ‘자아발전 시간’ 훈련신청표.

LG 야수들은 전지훈련지로 떠나기에 앞서 전체 캠프 일정을 보고 일자별로 원하는 훈련을 골랐다. 매일 타격·수비·주루 등 한 부문을 선택했다. 가령 1월29일 오후 집중 타격훈련을 원한다면 해당일 훈련신청표 타격란에 자기 이름을 적고, 이튿날인 30일에는 수비에 집중하고 싶다면 그날 훈련신청표 수비란에 이름을 쓰면 됐다. 해당 부문 코치는 수강신청을 받은 전문 강사 역할을 하게 된다.

훈련 계획표는 새 학기 수강 신청처럼 꽤 장기적이다. 선수들은 전체 캠프기간을 마라톤 코스로 보고 자기 페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보통 오후훈련 시작은 지원 부문 해당 코치와 함께 한다. 절반 정도의 나머지 시간은 지원 부문 선수들끼리 짝을 이뤄 훈련한다.

전지훈련이지만 선수들의 퇴근 시간도 다양해졌다. LG는 ‘오후 자율훈련’을 본격 시행 이후로 이동수단인 버스 수까지 늘렸다.

종전 대형버스 한대와 승합차 등으로 움직이던 LG는 대형버스 대신 미니버스 4대를 빌려 선수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오후가 되면 선수들이 삼삼오오 쪼개져 신청해둔 훈련을 소화하는 까닭에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도 파트별로 차이가 생겼다.

LG 김기태 감독은 ‘자아발전 시간’을 통해 선수단 내에 ‘자율 의식’을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선수들 스스로 시즌 준비 스케줄을 마련하고 자기에 맞는 훈련 성취도를 확인하다 보면 각각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감독은 LG 지휘봉을 잡고 처음으로 찾은 2011년 진주 마무리훈련부터 ‘자아발전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직접 훈련 신청서를 작성도록 한 것은 지난해 11월 일본 고치 마무리훈련이 처음이다. 고치 마무리훈련에서 첫 단추를 꿴 뒤로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본격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LG 이진영(오른쪽)이 오지환에게 타격훈련법을 조언하고 있다. LG 트윈스 제공

선수들의 만족도도 높다.

2년간 병역 공백을 보내고 돌아온 박경수(30)는 “이런 방식으로는 처음인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전지훈련을 시작하며 기본기를 다시 다져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그에 맞는 훈련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코치님들로부터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적받고 고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수는 올해 내야 주전 경쟁을 위해 내야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훈련하고 있다. 싸울 무기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LG 자율야구의 중심에 섰던 유지현 수비 코치는 “선수 스스로 전체 스케줄을 보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가는 방법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라며 “감독님이 부임 이후 추구하신 ‘자율’이란 개념이 이번 캠프 들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