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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떠나신지 1년 그리고 2개월이 더 지났다.

그런데도 마음 속 아버지 자리는 좁아들 줄 모른다. LG 봉중근(34)은 새 시즌을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란에 아버지와 함께 시구 이벤트를 하는 사진과 ‘아빠~. 올해 꼭 우승할게요. 지켜봐주세요’라는 다짐을 적어놨다.

2012년 11월4일 밤, 봉중근은 간암 투병중이던 아버지 곁을 지켰다. 고통으로 말문을 떼지 못한지도 벌써 며칠이 흘렀지만 그날도 아버지는 병원을 찾은 막둥이를 ‘미소’로 맞았다.

LG 봉중근

봉중근은 “정말 많이 아프신데도 제가 가면 꼭 웃으셨다. 어떤 힘이 있어선지 금세 멀쩡해진 것처럼 쳐다보시던 아버지 얼굴이 지금도 아주 선명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8시간을 아들과 함께 하고 이른 아침 하늘나라로 떠났다.

봉중근의 새해 소원은 아주 단순하다. ‘우승’이다. 하지만 우승하면 꼭 하고픈 일이 있다.

“우승을 할 수 있다면…. 전 마무리투수잖아요. 어차피 경기를 끝내는 게 제 몫일테니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은 공을 꼭 챙겨서 아버지 영전에 갖다 드리고 싶어요.”

1남3녀 중 막내인 봉중근은 고인이 된 봉동식씨에게는 정말 금쪽같은 아들이었다. 늦둥이로 어렵게 얻은 아들이 운동선수가 되려 하자 극구 반대했던 아버지는 봉중근이 신일중 3학년이 되던 해에야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아 유니폼 입은 아들을 안았다. 직접 몰던 개인택시 안도 아들 사진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봉중근은 “그렇게 오래 야구를 하면서도 가을야구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2012년 9월21일 잠실 롯데전에서 아버지를 시구자로 모셔 추억을 만든 것을 위안 삼고 있다. 환자복 대신 유니폼을 입고 홈플레이트의 아들을 향해 공을 던진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봉중근은 지난 15일 미국 애리조나로 출국하기에 앞서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새 시즌을 앞둔 자신을 돌아봤다.

■“올해는 WHIP 1.00과 싸움”

그러고 보면 우승을 해본지도 꽤 오래됐다. 봉중근은 “아마 1999년 애틀랜타 싱글A에서 뛸 때 우승해보고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가을야구 맛도 봤으니 더 가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봉중근이 잘 막아야 LG는 승리를 세이브할 수 있다. 봉중근은 마무리투수 두번째 시즌인 지난해 8승1패 38세이브, 방어율 1.33의 특급 활약을 했다. 마무리 첫해인 2012년 잘 달리다가 블론세이브 이후 홧김에 소화전을 내리쳐 오른손을 다치며 팀 전력에 타격을 주기도 했지만 지난해에는 고속도로 달리듯 순항했다.

봉중근은 “마무리 첫해에는 ‘욱’ 하는 성격이라는 평을 들으며 성적도 못 냈는데 지난해 비로소 야수들한테 믿음을 주기 시작한 것 같다”면서 “선수들에게 ‘LG 마무리는 봉중근이다’라고 인식시킨 게 가장 큰 소득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자가진단을 한다. 곧바로 자신에게 숙제를 하나 줬다.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에 관한 얘기다.

“작년에 아쉬웠던 것은 삼자범퇴가 원하는 만큼 많지 않았던 거예요. 마운드에 올라 볼넷이나 안타 1개 정도는 주고 경기를 끝내는 적이 많았어요. 올해는 그걸 줄일겁니다.”

봉중근은 지난해 WHIP 1.16를 기록했다. 이닝당 볼넷 또는 안타로 1.16명을 출루시킨 것이다. 지난해 ‘마무리 빅3’ 가운데 WHIP 1.12의 손승락(넥센)과는 비슷했지만, 삼성 마무리였던 오승환(0.83)에는 모자랐다. 봉중근은 올해 그 수치를 1.00 안쪽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두산 그리고 최준석과 싸움”

봉중근은 조금 더 빈틈을 줄여가기 위해 신경쓸 상대로 서울라이벌 두산을 꼽았다. “작년에 두산전에 비교적 실점이 많았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만나 진 것도 그렇고…. 좋은 타자들이 많은 팀이기도 해서 올해는 경계를 더 하겠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지난해 두산전에서 8세이브를 거뒀지만 상대 방어율은 3.18로 평균치를 밑돌았다. 또 두산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8회 등판해 3실점한 것도 와신상담을 위한 기억으로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다. 더불어 떠올리는 이름이 바로 지난 겨울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 최준석이다.

봉중근은 지난해 페넌트레이스에서 최준석과 대결에서 4타수 2안타를 허용한 뒤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솔로홈런을 맞기도 했다. 봉중근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부족했던 내용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게 많은 것은 전에 없이 좋은 몸 상태로 스프링캠프를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봉중근은 신시내티에서 뛰던 2004년 왼쪽 어깨수술을 하고, 2011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 및 보강 훈련 전문가가 돼있다. 지난해 12월 사이판 재활 캠프를 다녀온 뒤로는 왼쪽 어깨가 너무 단단해져 “어깨에 뽕을 넣었냐”는 농담까지 들었다. 몸 관리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운동선수 재활프로그램은 참 지루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꿔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 경험으로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꾸준히 하는 게 최고입니다. 그렇게 5~6년은 해왔고, 또 그렇게 다가올 시즌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7년 FA시대를 알았다면”

봉중근은 신일고 2학년이던 1997년을 보내고 애틀랜타에 입단했다. 봉중근은 요즘 국내 프로야구를 거쳐 해외 진출을 한 류현진(LA 다저스)과 오승환(한신) 등의 사례를 보면 느낌이 새롭다. 고교 시절 너무 특출나 미국야구의 부름을 받았고, 빅리그 마운드까지 밟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가 한국야구 환경 변화를 내다볼 수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먼저 간 것이 야구인생의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시대 한국야구에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보편화됐다면 국내 야구부터 뛸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제 국내에서도 해외 못지 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한국야구 입지도 상당히 달라졌잖아요.”

봉중근은 1시즌을 더 하면 해외진출 자격을 얻고, 3시즌을 더 치르면 FA가 된다. 기약할 수 없는 훗날 얘기지만 미국과 국내에서 뛰어본 만큼 일본 야구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는 “글쎄, 단언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중간계투로라도 일본에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한창 얘기를 하다 말고 스스로 말머리를 틀었다.

“그런데요. FA든, 일본이든 우승을 한번은 해보고 생각해볼 얘기네요. 어찌 됐든 LG 유니폼 입고 우승은 한번 해봐야겠어요.”